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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탐정의 탄생 - 아오사키 유고의 <체육관의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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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6-03-1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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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체육관에 탁구부가 가장 먼저 모였고 곧 연극부도 각종 무대 장치를 끌고 모였다. 그런데 장막은 왜 쳐져 있는 거지? 누군가 장막을 올렸다. 방송부 부장이 칼에 꽂힌 채로 무대 위에 죽어 있었다. 살인 사건. 경찰 콤비인 센도와 하카마다는 학생들에게 사정을 청취하다 체육관이 밀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와 연결된 통로는 학생들 시야 속에 계속 있었다. 무대 양쪽의 출입구는 안에서만 잠기는 데다, 심지어 그중의 하나는 연극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아직 체육관을 빠져 나가지 못한 걸까. 그들은 오 분 정도 체육관에 홀로 있었던 탁구부 부장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탁구부 부원인 유노는 부장을 구하기 위해 전과목에서 뜬금없이 만점을 받은, "은둔형 외톨이에 만화광"이자 "전형적인 구제불능 인간"인 우라조메 덴마를 찾아가는데…….

『체육관의 살인』을 읽었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을 테다. 작가인 아오사키 유고는 고작 21살의 나이에 이 소설 하나로 신인상인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받으며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어째서 많고 많은 추리작가 중에서 '엘러리 퀸'인가 하면은,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 나오는 '모자'에 대한 추리를 작중에서 '우산'에 대한 추리로 오마주하고 있어서도 그렇지만, 작가와 독자의 공정(fair)한 지적 대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어서도 그렇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지 않는가. 체육'관'의 살인. 신본격의 대표주자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연상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그런데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에서 방점이 찍혀야 하는 부분은 '엘러리 퀸'이 아니라 '헤이세이'가 아닌가 싶다. 주지하다시피, '신본격'은 교고쿠 나츠히토 등이 초자연적이고 비적당한 요소를 논리적 추론에 포함시키면서 공식적으로 종결되었고, 이후로는 요네자와 호노부 등의 '라이트노벨'화된 일상 추리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고전적인 추리소설은 이렇게 철 지난 양식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아오사키 유고가 불현듯 나타나 '오타쿠 탐정'을 내세워 '신본격'의 진중함을 '라이트노벨'의 경량감 위에 성공적으로 탑승시켰다. 그야말로 신시대(平成)의 추리작가였던 셈이다. 아무튼, 『체육관의 살인』은 '피날레의 추리쇼'를 바라는 정통파 마니아든 '킬링 타임'을 바라는 평범한 독자든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다. 별 것 아닌 물리적 트릭을 기가 막힌 심리적 트릭으로 극복해낸 결말에 이르면, 장담컨대, 누구든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역시 소설의 핵심은 서사(narrative)가 아니라 서술(narra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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